2010년 10월 3일 일요일

꼬맹이가... 숙녀가...

 

 

우리엄마는 정이 많다. 그래서 인지 나도 정이 많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프라이빗 한 사람이란 것이고 우리엄마는 오지랖까지 넓은 사람이란 것이다.

 

그 오지랖과 넘치는 정의 대상은 우선 친척이였다.

 

(꼭친척만은 아니였다.ㅋㅋ 오다가 만난사람들까지..)

 

내가 아주어렸을땐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한 결혼을 한 자신의 동생을 자신이 거두어 들여야

 

한다며 독립할때까지 자신이 보살펴주겠다고 하여 (우리엄마는 첫째다...)

 

난 셋째이모네 식구와 7살때까지 같이 살았었다. 그 시작은 내가 기억이란게 생성되기 전이니

 

정확한 상황을 후에 들은애기고 그져 난 내 기억의 최초부터 이모랑 이모부 사촌누나와

 

같은 식구였던 것이다.

 

이모네가 독립하고 약간지났을까 아빠의 고모의 딸.. 그러니까 나한테는 5촌누나 인가..

 

하여간 5촌누나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자 전라도 촌구석에서 무슨 공무원시험이냐고

 

바로 납치해서 우리집에서 1년간 공부를 시켜 합격의 밑거름 역활을 하셨다.

 

또 다른 친척누나가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졌다고 하자 (그당시엔 연합고사라는게 있었고

 

시골깡촌에는 고등학교가 별로 없어 떨어지는 사람이 많았었다.)

 

바로 데꾸와서 다음해에 고등학교 입학시키고 3년을 우리집에서 키우면서 대학까지

 

보내주었다. 훨씬 더 많은 등장인물이 있으나 뉘앙스 구실밖에 안되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물론 항상 나는 우리집안의 최대 희생자였다. 집안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나는

 

나의 공간을 내어주어야 했기때문에..

 

가끔 그 오지랖에 공백이 있어서 우리식구만의 단란한 생활을 한다 싶으면

 

방학만 되면 가까운 친척 꼬맹이들을 초딩때 기초를 튼튼히 해놔야 중딩되서 니가 공부하고

 

싶을때 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로 불러와서 공부를 가르쳤다.

 

그 오지랖의 마지막 꼬맹이가 바로 사촌여동생인데 나랑 딱 열살차이다. 5~6살 꼬맹이 때부터

 

우리엄마는 보고싶다고 데리고 오라고 꼬득였고 그렇게 한번 데려오면 한달 두달씩

 

끼고살면서 안돌려보내줬다 ㅋㅋ;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방학때만 끼고살수밖에 없는걸

 

우리엄마는 항상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아이와도 함께한 기억이 많다

 

놀이터에 철퍽 주저앉아 코 찔찔 흘리면서 개미잡아먹고 나한테 혼나고 ㅡㅡㅋ

 

같이 매미 잡으러 다니고.. ㅋㅋㅋ

 

졸리다고 놀이터에서 앉아서 자버리면 업고오고..그거보고 말하기 좋아하는 동네

 

아줌마들은 애가 애를 업고 간다고 수다를 떨고...

 

마지막으로 본건 내가  21살 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이였을 때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래봐야 숙녀가 되기 전이고 어린아이라는 기억은

 

코 찔찔 흘리면서 개미잡다가 손을 빠는 5살짜리로 남아있었다.

 

(21살 이후로는 나의 큰집을 걸음이 조금 뜸해졌고 갔다해도 그아이와는 어긋났었다.)

 

오늘 결혼식에 갔었는데

 

웬 숙녀한분이 수줍게 오빠 안녕~ 하는데 첨엔 누군지도 몰랐었다.

 

이번에 수능보고 내년에 대학간다고..

 

오빠랑 고모 보고싶어서 왔는데 고모는 왜 안왔냐고..그리고 지난애기들을 나누고..

 

헐 .. 그 꼬맹이가...;;

 

역시 여고생, 젊음에는 미모가 뛰어넘지 못하는 싱그러움이 있다.

 

전화번호 알았으니 나중에 친구중에 신붓감이라도 소개시켜

 

달라고 할까 ㅋㅋㅋㅋ 열살차는 넘 도둑놈인가 ㅋㅋㅋㅋㅋ

 

내년이면 내가 중학생일때 놀이터에서 개미잡아먹던 꼬맹이들이 대학생이라고

 

오빠~라고 하겠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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